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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의사회학21/졸혼계약서의 ‘방식’과 졸혼계약서 담을 ‘내용’들

졸혼/졸혼의사회학

by 죽비 2018. 1.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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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 졸혼 이야기 졸혼계약서 

종이책출간-http://www.bookk.co.kr/book/view/35854




졸혼의사회학21/졸혼계약서의 ‘방식’과 졸혼계약서 담을 ‘내용’들


사실 ‘계약’이란 말은 당사자 간의 손익을 규정하기 위한, 그래서 그 의미나 목적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다. 그런데 졸혼은 여전히 법적으로 부부관계를 유지 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부부간에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데 권리관계를 명시하는 형태의 ‘계약’이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이 바로 ‘졸혼’이 말장난 · 비아냥의 대상 혹은 조롱거리로 전락되는 빌미가 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혼 하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오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분명히 글을 쓰는 이 시각에도 여전히 이혼이 진행되고 있고, 누구나 다 아는 전통적인 이혼청구요소인 폭행·가출·외도·경제적 무능력 과 달리 신(新) 이혼청구요소인 배우자의 이혼강요· 별거· 장기 가출 등등 이혼까지 가지 않아도 결혼도 이혼도 아닌 그 어느 중간 형태쯤 표류하는 결혼형태가 분명 존재 하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를 ‘졸혼’ 그 중에서도 어느 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비자발적 졸혼’의 경우를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201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내담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이혼청구 관련요인을 보면 그동안 전통적으로 거론 되었던 부부간의 폭행 · 가출 · 외도· 경제적 무능력 과 달리 신(新) 이혼청구요소인 배우자의 이혼강요· 별거· 장기 가출 등 새로운 이혼청구 요소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혼은 남녀가 만나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자녀를 포함 한 가족을 이루게 된다. 이 과정에서 특히 황혼이혼의 경우 일전 가정법원의 조정판결처럼, 노부부 당사자가 이혼하고 싶어도 자녀 등 주변에서 반대하고, 또 당사자들 자신의 깊은 상처를 생각한다면 차선의 방식으로 현 부부관계를 유지 하면서도 따로 떨어져 사는 방식을 고려하게 되는데, 법원은 이를 반영 이혼대신 ‘졸혼’을 권유 조정했다.

‘조정’이라 하더라도 청구자 입장에서는 비자발적 졸혼의 경우일수 있고, 이때 ‘따로 떨어져 사는 방식’를 규정하는 규칙, 이를테면 ‘상대방에 연속해서 3회 이상 전화를 하지 말 것’과 같은 규정을 우리는 ‘계약’ 혹은 ‘계약서’라는 양식으로 남기면서 공유하게 됨을 알 수가 있다

사실 결혼은 가족에게 필요한 가치와 물질 그리고 후손을 함께 만들어 내는(?) 고유의 관계이다. 그래서 인연(因緣)을 맺은 이후 숨을 멈출 때 까지 남녀가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근원적 관계이다. 여기에 사적 권리관계를 표현하는 ‘계약’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끼일 수 없고 또 부적합 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은 변한다. 부부관계에서 ‘계약’이상의 의미가 담긴 사적영역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먼저 발현 돤 것은 아마 ‘성적 자기결정권’에서 부터 일 것이다. 그래서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계약’이라는 용어를 못 쓸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부관계에서는 몇 번 양보하더라도 ‘계약’이라는 용어보다는 ‘양해각서’(MOU) 혹은 결혼안식년(Marriage sabbatical year) 혹은 ‘결혼안식시간’ 이라는 용어로 대체 했으면 한다.

결혼이 파산되는 경우를 보면, 그 원인에 따라 어떤 혼인은 차라리 갈라서는 게 그 부부 당사자를 위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삼진 아웃제도처럼 ‘삼세번’이 적용되었으면 치유 될 수 있는 부부관계도 있을 수 있다. 법원 판결 전 이혼상담의무제도 혹은 이혼숙려기간을 통해 상당수 이혼이 철회되는 경우가 통계로 비중 있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졸혼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년이후 노년기의 경우에 졸혼의 의미는, 100세 수명시대 남은 인생을 취미생활로 보내기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부부 각자의 꿈을 실현하는 새로운 삶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졸혼을 이혼의 대안인 ‘비자발적 졸혼’으로 만 좁혀 생각하지 말고 인생후반기 남은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살기위해 필요시 결혼관계도 개인의 자아가 실현되는 쪽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다짐들과 생각을 ‘이심전심’으로 공유하면 되지만, 어떤 경우에 이를 표면화 하고 싶다면......우선 용어선택에서부터 우리는 졸혼 ‘계약’이라는 말보다 ‘양해각서’ ‘선언서’ 혹은 ‘안식시간’ 같은 용어로 사용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들의 졸혼계획에 별도의 명칭을 붙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졸혼계약서’라는 제목보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단계별 실천 패러다임’ ‘제2인생시간표’ ‘부부의 꿈을 실현시킬2018비전’ 혹은 ‘멋진 삶을 실천하기 위한 6070계획’ ‘자아를 찾아 떠나는 멋진 여행’ ‘자서전을 쓰기위한 나만의 시간들’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혹은 어느 철학자의 책 제목을 차용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등 부부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의 제목을 ‘계약’이라는 말보다 남은여생의 스케줄을 위한 멋진 제목을 정하고 그 아래 졸혼하고자 하는 내용을 기록하기만 하면 된다.

쓰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졸혼관련 부부간 대화내용을 녹음으로 남겨도 좋다. 아니면 스마트폰을 이용 동영상을 찍어도 좋을 것이다.

채워 넣어야 할 내용은, ‘비자발적 졸혼’의 경우 ‘졸혼=장기별거’를 빌미로 이혼으로 들어가기 위한 수순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음을 유의하고 이를 의식해서 ‘졸혼기간 중에는 이혼소송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과 그리고 법조계 쪽의 구체적 조언 중에는 ‘졸혼’관계였음을 증명하는 지인, 혹은 주고받은 메일 또는 통화내용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제3의 이성출현에 극도의 경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의식할 필요가 있고,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 까지나 이혼의 대안인 ‘비자발적 졸혼’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내용일 것이다.


pixabay / 재혼헬프라인 한국전환기가정센터포럼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에는 인간의 수명이 50-60세 전후였다. 이때 대부분의 결혼 존속시간은 ‘검은머리가 흰머리/파뿌리’가 되면 종료 되었다. 결혼선언문과 삶이 마감되는 시기가 일치 했던 시대로써 인생의 구분도 청년기와 노년기 뿐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00세 수명시대이다. 청년기와 노년기 사이에 ‘중년’ 혹은 ‘장년’의 시기가가 약 30여 년 간 존재한다. 이름 하여 이시기를 학자들은 ‘후기청년’ ‘신중년’ ‘시니어’라고 부른다.

4차 산업혁명 시기를 맞이해서 수명은 연장되는데 정년퇴직시간은 점점 더 역으로 짧아지고 동시에 아이들은 성장 후 집을 떠나 '빈둥지 시기‘를 맞이한다. 졸혼은 바로 이시기에 부부각자가 자신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미생활로 남은여생을 보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까운 시간을 상대방과 이혼하느라고 귀중한 시간과 정신력을 낭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졸혼내용은 결혼선언문 처럼 ‘졸혼선서’ 혹은 ‘자신의 다짐’등의 내용을 수필 방식으로 써도 좋고 (목적/ 하고 싶은 일/ 부부 혹은 가족이 지원 사항 등등) 법률조항처럼 1조, 2조, 3조...... 형태로 써도 좋다. 위아래 순서가 바뀌어도 좋고 생각 날 때마다 첨부를 해도 좋고 또 삭제해도 무방할 것이다. 필요시 자녀를 포함 가족과 함께 또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작성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형태든 자신의 의도와 목적이 담기거나 표현되면 내용이나 형식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전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신랑의 결혼선서가 참으로 신선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신랑의 결혼 선서 내용 중에는 “생활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반드시 자신의 책임 하에 처리 하겠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진일보한 내용이다. 졸혼 계약서나 선언문도 이런 식으로 쓰고 채워 나가면 된다.

하지만 삶과 인생은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졸혼을 하든 결혼안식시간을 갖든 아니면 각방분리해서는 사는 쇼윈도우 부부 같은 삶을 살던, 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달리 지금의 아버지세대들이 어렸을 때는 대부분 머리를 깎을 때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마을 이발관을 이용하곤 했다. 그때 마을 이발관에는 대부분 액자가 1~2개 걸려 있었는데 그 액자 안에는 조잡 했지만 당시 달력 등에 인쇄되는 명화의 복사본 같은 그림에 명언이나 명시의 글귀가 박혀 있었다. 다른 동네의 어느 이발소든 대부분 사정이 비슷했고 걸어둔 명화(?)나 명시 명언의 내용도 비슷했다.

당시 가장 많이 회자된 명시와 명언은 지금도 생각나는 게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싯귀가 중복으로 나오는 구루몽의 ‘낙엽’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제목의 푸시킨의 명언 이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


최고의 졸혼계약서의 내용은 바로 ‘이심전심’임을 추천하고 싶다. ‘자발적 졸혼’이던 ‘비자발적 졸혼’이던 인생과정을 거치다 보면 푸시킨의 명언처럼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워 질것 같다.








http://www.bookk.co.kr/book/view/78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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