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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환상이 아닌 생활의 연장/결혼전체크리스트①

결혼/결혼이야기

by 죽비 2020. 1. 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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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2020.01.04   /   updated  2020.01.05


결혼에 대한 그 여정과 서사/결혼전체크리스트①

결혼은 환상이 아닌 생활의 연장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부부의 연 아래 태어날 사랑스러운 아기,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행복한 어울림을 떠올려 본다면 결혼이라는 과정은 삶을 완성해나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방점으로 생각된다.

하버드 대학의 조지 베일런트가 일생을 바쳐 연구했던 행복의 조건 중 ‘안정적인 결혼 생활’도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지 않던가.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면, 분명 인간의 ‘평범한 삶’은 결혼을 빼놓고 논하기 어렵다.1)


#1. 결혼은 환상이 아닌 생활의 연장          그들이 만난 곳은 독서 토론회였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철학과 예술에 남다른 관심이 있던 그였다. 1년에 100권 이상의 책을 탐독하고, 술 마실 돈을 아껴 가며 시네마데크에 출퇴근하다시피 하는 그에게 그녀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녀는 미술을 전공했고 인문사회학에 관심이 많았다. 독서 토론회에서도 둘은 불꽃 튀는 논쟁을 벌였고, 시네마데크에서 거장들의 회고전을 보면서 서로의 해석을 내놓으며 대화를 진행해 갔다.

관계는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동안 만난 어떤 여자보다 그녀는 그의 연애관에 잘 맞는 상대였다. 그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연애였다. 지성과 교양이 대화를 압도했고, 찻잔을 앞에 놓고 벌이는 토론은 서로의 정신 세계를 나날이 고양시켰다.

사랑의 높이도 그와 더불어 함께 올라갔다. 그들은 사랑하며 존중했고, 나아가 서로를 존경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 결혼해야할 운명이라고 동시에 생각했다. 그는 그녀에게 프로포즈 했고, 당연히 그녀도 받아들였다.

결혼을 앞두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렸다. 함께 어떤 책을 읽고, 어떤 DVD를 사고, 주말에는 어떤 전시회를 보고…, 이런 정신적 계획이 주였다. 주변에서는 그들의 결혼 생활은 분명히 남들과는 다를 거라며 진심 어린 축복을 아끼지 않았다. 생활 속의 아귀다툼 따위는 남말이고, 동지적 관계에 기반 한 모범적 사례가 될 것임을 그들도 주변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명한 철학자의 주례로 결혼식을 마쳤고, 쿠바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체 게바라의 숨결을 느끼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에 나오는 바로 그 멜로디와 리듬을 만끽하는 그들의 여행길에 고된 일정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신혼집의 방 하나에는 책이 빼곡히 들어찼고, 또 하나의 방은 DVD와 음반으로 가득 찼다. 거실의 벽에는 그녀가 그린 그림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었다. 저녁이 되면 둘만의 아지트에서 연애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대화를 나누며 함께 예술 영화를 감상하는 나날이었다.

시간이 흘러 신혼이라 부를 수 없는 때가 왔다. 그들의 다툼은 이제 더 이상 철학과 예술이 아니었다. 양말을 뒤집어서 세탁기에 넣느냐 마느냐, 속옷을 손빨래하느냐 마느냐, 치약을 끝에서 짜느냐 가운데서 짜느냐 하는 자잘한 것들이 문제였다. 그녀는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그는 더 이상 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오직 동요와 클래식이 그가 듣는 음악의 전부였으며, 거실에서는 하루 종일 '뽀롱뽀롱 뽀로로'가 상영됐다. 책이라도 읽으려고 하면 애와 안 놀아 주고 뭐하느냐는 아내의 타박이 이어졌다. 그와 그녀가 꿈꾸던 이상적 결혼 생활 따위는 머나먼 우주로 실종되고 없었다. 그게 그들의 결혼 생활이었다. 남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선배 한 명은 마흔쯤 결혼하며 명언을 남겼다. "결혼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어졌을 때 해야 하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막상 겪어 보니 알았다. 결혼은 생활의 연장이지 연애의 연장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책도 알려 주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깨달음을, 그와 그녀는 생활을 통 해서야 알았던 것이다.2)


#2. 행복하냐고 묻지 마세요           상대의 시선이 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향했다. “결혼반지예요?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요?” 나는 차분히 대답한다. “이제 3개월 조금 넘었어요.” 어김없이 나오는 다음 질문. “어머 어쩜, 행복하죠?” 어쩌면 좋을까. 나는 살짝 서글픈 눈으로 웃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장면이다.

내가 그린 결혼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아침식사로 7첩 반상은 못 챙길지언정 달걀프라이와 빵, 과일주스. 이 정도는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웬걸. 바나나 하나 입에 물고 나가기도 버겁다. 평일 아침의 엘리베이터, 부스스한 머리와 구겨진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이게 아닌데’.

저녁이라고 다르지 않다. 꿈꾸던 신혼의 저녁은 동네 마트에서 시작한다. 함께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로 마무리. 이것도 웬걸. 마트 문 닫기 전에 들어온 날이 손에 꼽힌다. 큰 맘 먹고 구입한 접시들은 한낱 관상용이 됐다. 토요일 아침의 엘리베이터, 상해 버린 야채를 가득 담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서 있다. ‘이게 아닌데’.

“아니긴 뭐가?” 신랑이 물었다. “같이 밥도 못 먹고. 퇴근해선 씻고 자기 바쁘고. 주말엔 빨래하고 청소하고.” 말이 다다닥 튀어나왔다. 울컥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단 말야.”

나의 ‘행복론’은 이해받지 못했다. “둘 다 일을 하잖아. 출퇴근이 여유 있는 편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않을까.” 무심한 대답에 슬픔이 더욱 복받쳤다. “다들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사는데.” 그가 받아쳤다. “누가?”

잠시 말이 끊겼다. 누구였지. 엄청 많았는데. “내 페이스북 친구들이….” 정말 그랬다. 내가 바나나를 먹는 그 시각, 페이스북에는 신랑이 차려준 아침을 먹는 대학 친구 A의 사진이 올라왔다. 신랑에게 선물받은 백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 B도 있었다. B는 10년 넘게 얼굴 한 번 못 본 고교 동창이다. 많은 이의 ‘좋아요’ 세례를 받으며 웃고 있는 사람들. 너도나도 잘 모르는 사람들.

다음 날, 우리의 퇴근은 또 오후 10시를 넘겼다. 둘이 집 근처 산책로를 뛰기로 했다. 30분쯤 됐을까. 더운 날씨에 초췌해진 얼굴 위로 땀이 흘렀다. “아, 행복하다.” 그가 행복을 말했다. 사진을 찍어 남길 수조차 없는 이런 몰골로. 페이스북에 올려도 ‘좋아요’ 한 번 받을 수 없는 빈약한 스토리로.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줄곧 행복을 그리고 기다려온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불행할 수 있다니. 찾아보니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행복을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불행해진다”고 했단다. 방송인 홍진경도 TV에 나와 말했다. “삶이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니 나아졌다”고. 나는 이제 행복하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든 남에게든.3)


3. 다시 획득한 결혼의 자격           첫눈에 반했었다. 음, 거의 그랬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난 그때 만 17세의 버거킹 아르바이트생이었고 그녀는 19세의 매니저였다.

그녀는 자신이 상사라는 사실을 강조해서 그녀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난 그녀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보았다. 우리는 동료로 시작해 친구가 됐고 곧 애인 사이로 발전했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우린 결혼했다.

오늘날 성공적인 결혼의 확률은 매우 낮다. 젊은 부부의 경우에는 더 나쁘다.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어려울지에 대한 상상도 없이 난 만 18세 생일 다음 날 결혼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건 좋지 않다고 조언했지만,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함께라면 못할 게 없을 것처럼 느꼈다.

결혼하고 몇 년 동안은 괜찮았다.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큰 사건은 없었다. 난 19세에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는데 1년이 안 돼서 억 단위를 벌었다.

그런데 사실 사업적인 자질이 부족했던 나는 회사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1년 4월이 되어서는 180,000달러(약 2억 원)의 부채를 떠안았고 아내와 돈 문제로 자주 싸웠다.

다음 해가 되어도 싸움이 계속 이어지자, 우리는 결혼생활이 완전히 끝날 수도 있다는 걸 감수하며 별거하기로 했다. 난 그때의 대화를 기억할 때마다 아직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별거 다음 날은 아마 내 평생 가장 힘든 하루였던 것 같다. 친구 집에서 아침에 깨었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마음 아플 수 없었다.

난 울었다. 또 소리 질렀다. 자살도 생각해봤다. 난 내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내가 이혼한 부모님을 바라봤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나를 그렇게 볼까 걱정했다. 그녀의 삶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생길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난 구토를 했다.

나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돈 문제, 관계 문제가 있었던 것은 물론, 나는 보통 체중보다 100kg 넘게 비만이었다. 헤어진 다음 날 인생의 알람벨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별거한 첫날 나는 실컷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하더라도, 다시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 인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두 번째 날 아침 나는 테니스화를 신고 뛰러 나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장거리는 뛸 수 없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질주했다. 또 식단에서 패스트푸드를 모두 제외하고 건강한 재료로 대체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전화했지만 음성메시지로 넘어갔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의지로 매일 눈을 떴다. 많은 눈물과 변화를 거친 후에서야 발전된 나의 모습이 조금 보였다. 그리고 이때 즈음 아내와 나는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런 대화가 데이트로 연결되고 또 데이트를 통해 서로를 재발견했다.

이혼 판결 예정일 전날, 나와 아내는 법정에 가서 이혼소송을 무효로 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을 선택한 결정이었다. 쉽지는 않았던 세월이었지만, 대단하고 보람찬 16년을 이제까지 그녀와 함께 살아왔다. 우리의 결혼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4)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불행한 시간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영국 BBC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BBC는 '가족-결혼요법저널(the Journal of Marital and Family Therapy)'에 게재된 연구보고서를 인용, 행복한 부부관계의 지름길은 완벽한 결혼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시간들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를 제출한 캘리포니아주립대학과 노스리지대학 그리고 버지니아공대 연구팀은 결혼생활을 항상 행복한 것으로 묘사하고 완벽한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게 만드는 동화와 현대판 러브스토리가 오히려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만드는데 책임이 있다며 비난했다.

또 "충분히 노력하면 힘들지 않고 안정된 결혼생활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신화"라면서 "비현실적인 목표는 결국 행복한 결혼생활에 실패했다는 패배감만 안겨줄 뿐"이라고 조언했다.5)

“결혼은 서로의 삶에 돌진하지 않고 신뢰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한때의 낭만적인 사랑이 좋은 결혼생활을 보장하리라는 환상을 버리는 것(아놀드 라자루스 저『결혼의 신화』)”6)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1)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결혼에는, 반드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정신의학신문, 2017.12.11

2) 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JES), [섹시토크] 결혼은 환상이 아닌 생활의 연장이다, 중앙일보, 2008년 2월 19일

3)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시선2035] 행복하냐고 묻지 마세요, 중앙일보, 2014.07.12

4) Kimanzi Constable, 아내와 내가 별거한 다음 날, huffingtonpost.kr, 2015-03-01

5) 서울=뉴시스,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 2007.06.02

6) 고혜련 (주)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더,오래] 유명인들의 이혼사유 '성격 차이'는 대외용 멘트, 중앙일보, 2017.11.22




*필자도서목록 


http://www.bookk.co.kr/kh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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